내가 그 애를 사랑하는 이유 (1부)

야설

내가 그 애를 사랑하는 이유 (1부)

avkim 0 1231 0

그 애를 처음 만난 건 불과 얼마 되지 않았다. 그간의 경력이 알려졌는지 과외문의는 많이 들어오는 편이지만 난 내 나름대로의 기준이 있었다. 어차피 과외란 것이 봉사활동은 아니 었기에 년말 쯤 세 명만 선택을 한다. 학생들의 성적표와 집안의 내력을 보고 부모와도 면 접을 한 뒤 세 명의 학생만 받았지만 난 최선을 다해서 그들을 가르쳤고 내 공부를 방해받 지 않기 위해서 화, 목만 가르쳤다. 학부모들이 지출해야할 과외비는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수준을 넘었고 그러한 경제력이 없는 사람들은 나를 찾지도 못했다. 그래도 그들은 불평은 커녕 그저 가르쳐준다는 것에만 감사했다. 철저한 공부를 시켰고 때로는 매를 들기도 했지 만 그들의 부모들 이상의 기대를 충족시켜왔고 그것은 나에게도 꽤나 만족을 주는 과정이었 으며 내 마음에 드는 아이들로만 고르기 때문에 이러한 생활이 그리 어려울 것은 없었다.

 

나이차도 있었으며 여자들에 대한 실망으로 인해 어설픈 문제들 역시 일어나지 않았었다. 그 애를 알기 전까지는. . . 이번 텀에서는 두 명의 여학생과 남학생 하나가 같은 팀이었는데 몇 달 동안은 예전과 같이 계획대로 모든 것이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평소에도 모범생이던 그들은 더 높은 점수를 얻 게 되었고 매번 번갈아가며 30분 동안 그들과의 일대 일 면담을 통해 아이들은 시험에 대 한 부담 보다는 시험이후에 주어질 새로운 생활을 상상하며 고된 가르침을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나 또한 내 자신의 미래를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고 나에게 닥쳐올 변화들에 대한 생각은 꿈에서조차 해보지 않았었다. 하지만 현실은 단순한 과거의 반복이 아니며 삶이란 끊임없는 우연과 필연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지기에 나는 예전의 도도함을 버 려야만 하였다. 그 일들도 내 삶의 일부분이기에 예측하나 확정할 수는 없는 인생의 불확실 성의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다.

 

나는 내가 정한 룰을 따르는 한 그들에게 누구보다 자상했지만 내가 정한 범위를 벗어나면 엄격함으로 그들을 대했고 종아리에 피멍이 들게 하는 것도 꺼리지 않았다. 그게 싫다면 관 계를 끊으면 되지만 어느 학부모라도 그러한 일로 나를 피곤하게 만드는 분들은 없었다. 그 러한 엄격함은 나에게도 적용이 되기에 아이들에게 틈을 주는 일 따윈 하지도 않았으며 아 이들 역시 묵계에 따라 내 뜻을 거스르는 일이 드물었기에 사제의 정 보다 형제들 간의 끈 끈함이 우리를 묶어주었고 예전의 제자들 역시 지금까지 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그렇다고 꽉 막힌 것도 아니기에 어느 정도의 유두리는 주었다. 그날도 그러했다. 짙은 하 늘에서는 끊임없이 눈이 내렸고 쌓이던 눈은 어느새 도로위에서 차들의 자취를 감추게 했 다. 그러기에 경아와 인협이의 전화에 흔쾌히 스터디를 미루었고 그 애에게도 전화를 했지 만 연결 음만 들릴 뿐 끝내 스터디가 연기된걸 알리지는 못했다. 하는 수 없이 한 시간을 넘어 걸어서 눈사람이 되다시피 하여 오피스텔에 도착하였다.

 

겨우 시간에 맞추긴 했지만 추위에 시달리고 몸이 젖어서 급하게 샤워만 하고 그 애를 기다리고 있었다. 연락도 없었고 모일 시간이 지났음에도 그 애가 오지 않았기에 속으로만 화를 삭이고 있었는데 아홉시 반 이 지나서야 초인종이 울리는 것이었다. 물론 그 애인 것을 알기에 묻지도 않고 화난 얼굴로 문을 열었지만 젖은 머리가 다시 얼도 록 긴 거리를 걸어왔다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알만 하기에 조용히 비켜서며 들어오기를 기 다렸다. 하지만 그 애는 겁을 먹은 듯한 표정으로 그렇게 추위에 떨면서도 들어올 생각조차 못하고 머리를 숙인 채 자신의 발끝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한 모습을 보니 측은한 마음에 화난 마음을 누르며 들어오라고 말했지만 여전히 미동도 않고 있었다. 가만히 보니 긴 머리 끝에 달려있는 얼음과는 달리 신발은 눈길을 걸으며 모두 젖었기에 나무로 바닥을 깐 오피 스텔이 더러워질까봐 못 들어오는 것 같았다. 하기야 그 애라면 그러고도 능히 남을 아이였 다. 가끔씩 하는 농담에도 그저 입 꼬리만 잠시 움직일 뿐 두 시간을 가르치면서도 말 한마 디 듣기 어려울 만큼 내성적인 아이였기에 아무 걱정 마라며 손을 잡아끌다시피 문 안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하지만 생각보다 그 애의 상태는 심각했다. 신발 뿐 아니라 외투며 치마 까지 젖은 상태였으며 추위로 인해 눈에 띄게 떨고 있었기에 내 운동복과 함께 욕실로 밀어 넣었다. 그러고 보니 난감했다. 그 아이의 집에는 여전히 연락이 닿지를 않았고 설사 전화 가 된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날엔 차를 움직일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기에 그 아이뿐 아니라 나도 오랫동안 눈 속을 걷지 않았던가. 나는 여자로 느껴지는 사람이 없었기에 복잡한 일이 일어날 거라곤 생각지 않았으며 다른 사람들이 오해를 살만한 일은 하고 싶지 않았으나 이번은 어쩔 수가 없었다. 상황이 그러하 기에. 욕실에서는 물 흐르는 소리가 그치고도 오랫동안이나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그 아이의 이름을 부르니 조그맣게 대답소리는 들렸지만 여전히 문은 열리지 않았다. 몇 번을 재촉하고서야 겨우 문을 열고 나오긴 했지만 자기의 발가락을 보는 모습은 여전했 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공부할 여건은 안 되고 하니 상담이나 하려고 따뜻한 코코아를 타서 그 애 앞에 놓고선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 애의 어머니는 비록 혼자이긴 하지만 당당 한 모습이셨고 외국에 출장을 자주 가신다고 저번 면담 때 들었었다. 대부분 내가 말을 하 기는 하였지만 이야기가 길어지는 동안 그 아이를 통해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사실 은 어머니가 명품을 취급하는 일종의 보따리상이셨고 자기의 학비가 버거워 요즈음에는 거 의 뵐 수도 없다는 말을 하는 사이 고개를 숙인 그 아이의 젖은 머리칼 사이로 물기가 번졌 고 나는 못 볼 것을 본 듯 화들짝 놀라 마른 헛기침만 해대었다. 그러면서도 그 아이가 측은하게 느껴졌고 가냘픈 몸에 헐렁한 운동복을 입은 모습이 더욱 가슴을 아프게 했다. 그렇다고 무작정 밤을 샐 수는 없는 노릇이니 화장실에 가는 척하며 그 애가 눈물을 닦기를 기다린 후 하나밖에 없는 침대를 그 애에게 내어주며 난 보일러 온 도만 높인 채 옷을 두껍게 입고선 잠을 잘 준비를 마쳤다. 하지만 그 아이는 도무지 침대에 오르려고 하지 않았다. 자기 땜에 내가 불편한 게 싫었던지 막무가내로 버티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그 애를 바닥에 재울 순 없는 노릇이고 둘이서 같이 침대에 눕는다는 것은 더욱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억지로 다그쳐서 침대에 누이곤 나도 조금 떨어져서 바닥에 대충 자리를 잡고 누웠다. 아무렇지도 않게 잠을 청했지만 도무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물론 그 아이는 가냘픈 몸매 에 순진한 듯한 이미지를 가진 얼굴이 꽤나 이쁜 아이였지만 여자로 느껴본 적은 없었으며 지금 역시 그러했다. 하지만 조금 전 그 아이가 흘리던 눈물이 자꾸만 내 가슴에 떨어지는 듯 정신은 더욱 또렷해지기만 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그 아이가 자고 있지 않다는 것 또 한 쉽게 알 수 있었다. 미약하지만 침대가 조금씩 떨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왜 그런지는 알고 있었지만 불행하게도 어떻게 해야 하는 것까지는 알지 못했다. 어두운 하늘에 내리는 눈 사이로 힘겹게 들어오는 가로등 불빛만이 간신히 그 아이의 아픔을 나에게 알려주었고 난 그 불빛을 원망하며 어쩔 줄 모르며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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