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 - 3부2장

야설

알바 - 3부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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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 착하고 귀여운 악마













[1]

아이린은 고구려 호텔 레스토랑으로 우리를 데리고 갔다. 이이린은 경식이와 앞장서고, 지혜는 내 팔짱을 기고 우아한 걸음으로 뒤를 따른다. 지혜는 서전무는 지혜의 새엄마와 같이 나와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인사를 하는데, 지혜는 완전 배꼽인사를 한다.










"어머니, 아버지. 안녕하셨습니까?"










이러는 지혜의 낯선 인사에 서전무 부부는 멈칫한다. 우리가 자리에 앉는데, 새엄마가 아이린에게 소근거린다.










"언니, 지혜 쟤 왜 저래? 무슨 일 있었어?"

"일은 무슨 일? 쟤 저러는 것, 나도 지금 처음 보는데?" 










식사를 하면서 나와 서전무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아이린도 새엄마와 이야기를 하는데, 지혜와 경식이는 조용하다. 내 촉이 유난히 지혜에게 쏠린다.




서전무는 지혜와 경식이를 칭찬하는 말을 했다. 그런데도 지혜는 꼭 필요한 대답만 간단하게 한다. 서전무는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 나에게 눈짓을 했지만, 나도 모르는 일이라고 표정으로만 대답했다.







그런데 지혜는 대형 사고를 쳐버린다. 서전무가 지혜에게 이번에 캐나다에 가면 조심하라고 한마디 했다.










"이번 해에 우리 지혜는 엄청난 성과를 냈거든.

그래서 이번에 캐나다에 보내주는 거니까 사고 치면 안된다."




"예. 감사합니다. 명심하겠습니다."

"너 방금 뭐라고 했지?"




"아버지께서 저에게 하신 말씀을 명심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흐으음. .. 그으래애?"










지혜가 대답하는 이 말에 서전무의 옆에 있던 지혜 새엄마의 눈이 휘둥그래진다. 놀라기는 지혜를 제외한 우리 모두 마찬가지이다.










"어머머. 지금 얘가 서지혜 맞아?"

"예. 저는 어머니의 딸 서지혜입니다."




"너 왜 이래? 어쩜 이럴 수가 있어? 너 혹시 결혼했니?

그 말투가 꼭 시집가서 시부모님이랑 얘기하는 것 같다?"




"아이. 참. 어머니.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이제 한 살 더 먹을거니까, 좀 더 으젓한 모습을 부모님께 보여드리고 싶어서 그럽니다."













그야말로 완전 빵터졌다. 우리 모두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으려고 애를 썼지만, 실패한 것이다. 그래도 지혜는 안색이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










저 쪼끄만게 도대체 무슨 꿍꿍이속으로, 또 무슨 수작을 부리는 것일까? 헤어지면서 지혜의 새엄마는 지혜의 손에 봉투를 쥐어준다.













"캐나다 현금을 준비하지 못했을 것 같아서. ..

많지 않으니까, 부족하면 최박사님께 말씀드려."










지혜가 그 봉투를 받아서 내 주머니에 넣어준다. 그리고 일어서서 배곱인사를 한다.










"어머니, 아버지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도대체 무엇이 지혜를 이렇게 만들었단 말인가? 냬가 지금 혹시 무슨 마법에 걸리기라도 했나?







캐나다에는 최은희도 있고, 또 나에게 신용카드도 있어서, 나는 캐나다 현금을 준비할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역시 서전무가 성격이 참 꼼꼼한 것 같다. 우리는 작별을 하고 헤어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지혜는 말없이 창 밖을 바라보기만 한다. 나와 아이린은 모두 영문을 몰라서 지혜의 눈치만 살폈다.













[2]

집에 도착하여, 경식이는 피곤하다며 자기 텔로 올라갔지만, 아이린과 지혜는 2층에 있는 내 텔로 들어왔다. 아이린이 와인을 준비해서 우리는 소파에 앉았다. 그런데 아이린이 와인을 마시면서 걱정스럽게 지혜에게 물었다.










"지혜 너 혹시 무슨 일 있니?"

"일은 무슨 일?"




"그런데 너 오늘 왜 그래? 도대체 아무도 너에게 적응을 못하고 있잖아."

"마음 고쳐먹기로 했거든. 이제 나이 값 하면서 살아볼까 해. 엄마가 적응해." 




"적응은 차차 할테니까, 비하인드 스토리가 뭔지 알아듣기 쉽게 얘기나 해봐."




"비하인드라고 할 것이 뭐 있어?

이번에 내가 약간 쇼크를 먹었다고나 할까?"




"그러니까 그게 도대체 무슨 일로 그러느냐고."




"내 인생 더 이상 이대로는 안될 것 같아서, 나도 이제 뭔가를 생각을 다시 하려고.

생각이 바뀌면 인생이 바뀐다. 이런 말 몰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애가 그렇게 순식간에 바뀔 수 있어?"




"역시 나한테는 아무래도 쫌 안어울리나봐?”

“안어울려도 많이 안어울리지.”




“엄마. 그럼 어떡하지? 차라리 천천히 조금씩 바뀌는 걸로 할까?"










지혜는 엄청 진지하게 엄마와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나는 둘이 하는 대화를 듣다가 또 웃음이 터질 것 같아서 급히 욕실로 달려야 했다. 







우리는 내일 아침에 7시에 집을 나서는 것으로 하고, 늦어도 6시에는 일어나야 하므로 일찍 자기로 했다. 아이린은 헤어지기 전날 밤에 지혜랑 같이 잔다면서 지혜를 아파트로 데리고 가겠다고 했다.




나는 아이린과 지혜를 아이린의 아파트로 데려다주고 와서 최은희에게 전화를 했다. 그녀는 한수정의 상태가 아직 전과 같으며, 여전히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나는 나와 지혜가 타고 갈 비행기와 도착 시간을 말해주고 통화를 끝냈다.













[3]

다음날 아침 일찍 아이린과 지혜가 내 텔로 와서 나를 깨운다. 지혜는 잠을 한숨도 잘 수가 없었다고 한다. 나는 샤워하러 가고, 경식이도 내려와서 지혜와 함께 내 차에 짐을 실었다.




지혜가 옷 입은 것을 보니까 멋부리는 것 보다는 방한에 신경을 썼다. 아마도 인터넷에서 여기저기를 많이 뒤져본 것 같다. 화장을 살짝 했는데, 어색하지도 않다.










"이 정도면 오빠가 옆에 데리고 다녀도 봐줄만 해?"

"그게 아니라 엄청 예쁘거든요. 하하."










우리는 커피를 마신 후에, 밖으로 나가서 차에 탔다. 경식이도 공항에 가겠다며 같이 탄다. 우리는 7시 이전에 집을 출발했다. 운전은 내가 했다. 아이린은 겨울만 아니면 여행 삼아 자기도 따라갔으면 좋겠다고 한다.










“엄마도 참. .. 우리가 지금 놀러 가요?

대한민국 아줌마 분위 파악 진짜 못한다니까.”




“아아. 그렇네. 미안. 미안해요.”










지혜는 둘이 나란히 자리를 배정받자면서, 서둘러서 체크인 하러 가자고 했다. 벌써 창구에는 줄이 길게 늘어서있다. 그 덕분에 지혜는 창가로, 나는 그 옆 자리로 받았다. 우리 캐리어도 맡기고 나니까 홀가분하다. 지혜는 어깨에 멘 가방, 나는 손에 들고 있는 노트북, 그리고 작은 손가방 뿐이다.




체크인을 끝내고 나니까 탑승 시간이 아직 1시간 정도가 남아있다. 우리는 간단하게 뭐라도 먹자면서 공항 카페테리아로 가자고 했다. 그런데 지혜의 새엄마가 왔다는 전화가 와서, 경식이가 가서 데리고 왔다. 지혜가 다시 공손 모드로 돌아간다.










"이른 시간인데, 어머니 나오셨어요?"

"얘가 정말. .."










새엄마는 고개를 절레절레 한다. 그런데 지혜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다.







우리는 모두 카페테리아로 가고, 아이린과 새엄마가 빵과 커피 그리고 쥬스를 들고 온다. 모두 빵을 먹는 사이에, 나는 송실장에게 전화로 인사를 했다. 지혜가 화장실에 갔다 오더니, 우리 비행기 탑승객은 준비하라는 방송이 나왔다면서 일어나자고 한다.




우리는 출국 게이트로 갔다. 지혜는 아이린 그리고 새엄마와 포옹을 한다. 아이린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하지만, 지혜의 얼굴에는 아직 어린애처럼 기쁨을 참고 있음이 역력히 드러난다. 얼굴이 버얼겋다. 아이린과 새 엄머는 내 양 손을 하나씩 잡고 잘 갔다 오라면서 인사를 한다. 경식이도 지혜와 내 손을 하나씩 잡는다.










"누나. 형 꽁무니 잘 붙잡고 따라다녀. 국제 미아 보호소로 찾으러 가세 하지 말고. 하하."

"오빠가 나 확실하게 챙기니까 걱정은 붙들어 매셔."










나와 지혜는 식구들에게 손을 흔들고 나서, 지혜는 나에게 팔짱을 끼고 게이트를 빠져나갔다. 뒤에서 식구들이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린다.










"형님, 저 둘이 정말 잘 어울린단 말이야."

"아이 참. 아직 어린애한테 무슨 소리야?"




"지금 지혜는 시집갈 준비하면서, 연습하는 것 같지 않아요?"

"변덕이 하루에고 몇 번씩 죽 끓듯 하니까 두고 봐야지."













게이트를 통과하자 지혜가 내게 말했다.










"하아. . 어떡해?"

"왜? 떨리니?"




"그것도 그건데, 새엄마한테 들켰어."

"뭘 들켜?"




"시집가는 것 연습한다고 .."




"아휴. .. 요 꼬맹이. 벌써부터 난리야?

시집보다 대학을 먼저 가야 하는 것 아니니?"




"대학이야 당연히 가는 거고. .."




"대학보다 더 어려운 것이 시집이래.

대학 준비가 2년 걸리면, 시집갈 준비는 그보다 더 오래 걸리지 않나?

그래서 미리 손 좀 쓰려고. 헤헤." 




"신랑감은 구해놨니?"

"신랑감은 일단 캐나다에 갔다 와서 생각할게."













[4]

우리는 보드카드에 있는 자리에 앉았다. 지혜는 내 손을 꼬옥 잡으며 내게 기대온다. 










"이제 가는 거지?"

"이륙해야 가지."




"한수정 언니만 생각하지 말고, 내 생각도 쪼끔 해주면 안될까?"

"지혜야. ..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시집가는 연습한다니까, 뭐야? 신랑감을 구해?"

"순서를 놓고 보면 틀린 말 아닌데?"




"아오오. .. 진짜 미워 죽겠다."










간밤에 잠을 설치기는 나나 지혜나 마찬가지였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지혜는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다. 나는 승무원에게 덮을 것을 달라고 해서, 지혜를 덮어주고, 나도 덮었다.




우리가 벤쿠버 공항에 내렸을 때에, 벤쿠버는 하얀 눈에 덮여있다. 서울에서는 눈 보기가 쉽지 않아서인지 지혜는 너무 좋아한다. 










"와아아. 눈이다."










기다렸다가 비행기를 갈아타고 토론토로 가는 동안에 지혜는 계속 창 밖을 바라본다. 눈에 덮인 대륙이 신기한 모양이다.




드디어 토론토 피어슨 국제 공항에 도착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이 곳도 역시 눈에 덮여있다. 입국 수속을 하고, 짐을 찾아서 대합실로 나오니까, 최은희가 우리에게 손을 흔든다.










"김태현씨!"










우리는 최은희와 만났다. 밤이 늦은 시간이어서 그런지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았다. 나와 최은희는 너무 반갑게 포옹을 했다. 지혜가 있는데도 최은희는 내 입술과 양쪽 뺨에 가볍게 키스했다.










"너무 반갑다. 비행 어땠어?"

"지겹지."




"캐나다에는 처음이지?"

"어."










지혜를 힐끗 쳐다보니까, 지혜는 눈을 깜빡이면서 우리를 보고만 있다.







최은희는 지혜와도 포옹하고 지혜의 양쪽 뺨에 키스를 한다. 그런데 지혜는 최은희의 볼에 키스를 하지 않는다.










"먼 길 오느라고 수고했어요. 너무 반가워요."

"저도 박사님을 여기서 뵈니까 더 반갑습니다."










지혜가 또박또박 인사를 했지만, 최은희는 그것이 별 일 아니라는 듯 넘겨버린다. 나와 지혜는 겨울용 파커를 입고 있지만, 최은희는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는 파커를 입고 있다.










"두 사람, 그렇게 입고 춥지 않겠어?"




"괜찮아. 추운 것이 서울이랑 비슷하네.

더 추우면 입을 옷은 따로 가져왔어."










최은희가 주차장에 가서 차를 갖고 10분 정도 후에 우리를 데리러 들어오겠다고 했다. 밤 10시가 가까운 지금 바깥 기온은 영하 7도라고 하는데, 바람이 차다고 한다. 서울이랑 비슷한 것 같다.




최은희가 다시 왔다. 우리는 그녀의 차에 탔다. 지혜가 뒷좌석으로 혼자 타고, 나는 최은희의 옆자리로 앉았다. 다행히도 차도는 제설작업이 되어있다. 최은희는 그래도 천천히 운전한다.




그녀는 시내로 들어가면서 우리에게 잠시 이 도시의 거리를 설명하면서 구경시켜준다. 크리스머스와 연말 때문에 토론토 시내는 트리와 전구로 예쁘게 장식되어 반작인다. 도시 전체는 조용하고, 눈에 덮인 채로 전구들이 반짝이는 것이, 토론토의 밤거리는 동화에 나오는 한 장면같다.







또 최은희는 한수정의 교통사고가 났던 곳으로 우리를 데리고 갔다. 최은희가 사고의 경위를 설명하는데, 사고가 난 사거리는 워낙 커서, 부주의로 그런 사고를 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같다. 










최은희와 나는 불어로 이야기를 했다.










"어디서 잘래? 나랑 같이 우리 집에서 자라."

"지혜 때문에 안돼. 우리는 호텔에서 자야 해."




"그런데 남자 여자가 둘이 같은 방을 써도 되나?"

"아직 어린 애인데 어때?"




"어리긴 뭐가 어려? 다 컸는데."




"그 일은 걱정하지 마. 지금 문제는 그게 아니잖아. 

수정이는 아직도 응급실에 있어?"




"오늘 아침에 일반 병실로 옮겼어. 504호인데, 6인실이래."










최은희는 우리에게 병원의 위치를 가르쳐주었다. 또 괜찮은 호텔이라면서, 병원 근처에 있는 호텔 앞에서 우리를 내려주었다. 간판에 깔벵 호텔이라고 적혀있다. 그런데 최은희는 나에게 작은 지갑을 하나 건네주었다. 그 안에는 캐나다 달라와 센트들이 지폐와 동전으로, 종류별로 들어있다.










"많은 돈은 아니야. 더 필요하면 또 얘기해."










그녀는 또 우리에게 비닐 팩을 주었다. 그 안에는 음료수와 간식으로 먹을 수 있는 빵과 과자들이 들어있다.




밤이 늦어서, 내일 아침에 만나기로 하고 우리는 헤어졌다. 그녀는 우리에게 손을 흔들고 가버렸다. 













[5]

나와 지혜는 호텔에서 1주일을 머물기로 하고 방을 받았다. 402호실이다. 짐을 들고 들어오는 직원이 히터를 올려준다. 나는 고맙다면서 5달러짜리 지폐 한 장을 주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정면에 도로를 향한 창문이 있다. 왼쪽과 오른 쪽에 방이 하나씩 있고, 가운데에는 소파가 있다. 뒤로는 주방과 욕실이 있다. 베란다나 발콘은 없다. 그런데 창문이 전부 다 엄청 크다. 방 하나가 침실인데, 주문한 대로 1인용 침대가 약간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다. 







지혜는 소파에 털썩 주저앉는다. 나는 한 바퀴 둘러보고 지혜의 옆자리로 앉았다. 지혜가 몸을 내게로 돌리고 내게 안기며 내 어깨에 얼굴을 얹는다. 나도 지혜의 등을 팔을 두르면서 지혜의 머리에 내 얼굴을 묻었다. 잠시 후에 지혜가 얼굴을 치켜들고 입술을 내민다. 우리는 가볍게 키스했다.










"하아. .. 오빠. .."

"우리 지혜. 피곤하지?"




"꼭 신혼여행 온 기분이야."

"하하. 뭐야? 가 본 적은 있고?"




"누가 가봤대? 신혼여행을 가면 이런 기분이겠구나 이 말이지. 헤헤."













지금까지 시무룩해 있던 지혜가 다시 명랑해진다. 방안도 따뜻해온다. 우리는 먼저 옷을 꺼내서 갈아입고 나서, 가방을 열고 짐 정리를 했다.










"지혜, 피곤하니? 잠 와?"

"아니. 왜?"




"비행기에서 잠을 너무 많이 자는 바람에 잠이 안와서.."

"나도 그런데, 어떡해?"




"이럴 때는 위스키 한 잔 마셔야 하는데 .."

"그럼 같이 나가요. 뭐가 문젠데?"




"너는 미성년자라서 안돼."

"겉으로 보면 표가 나?"




"그럼 안나?"

"그래서 지금 혼자 나가겠다고?"




"그럴 수도 없고 말이야 .."










우리는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에 호텔 방을 나섰다. 로비에 가서 물어보니까, 밖은 이미 자정이 넘어서 갈 만한 곳이 없고, 이 호텔 지하에 와인 위스키 바가 새벽 두시 까지 문을 연다고 한다. 우리는 계단으로 해서 지하로 내려갔다. 




바 안은 은은한 조명과 성탄절 장식, 그리고 피아노에서는 조용한 라이브 음악이 은밀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몇 개의 테이블에는 우리처럼 잠을 이루지 못하는 손님들이 술을 마시고 있다. 손님들 중에는 혼자 앉아있는 남자도 있고, 또 혼자 앉아있는 여자도 있다.




지혜가 천천히 한바퀴를 둘러보더니 내 귀에 소근거린다.







"따라오기를 정말 잘했네."

"뭐가?"




"오빠가 저기 저 쪽에 앉아있는 여자를 절대로 그냥 두지 않았을 것 같아."

"쪼끄만게 못하는 소리가 없어."




"영화 보면 나오잖아?

"제가 드링크로 초대해도 되겠습니까?" 하면서 남자가 접근하거든.

딱 오빠 스타일이구만. 안봐도 동영상이다."













나는 위스키를, 그리고 지혜는 오렌지 쥬스를 주문해서 마셨다. 그런데 지혜가 다짜고짜로 내게 물었다.










"오빠. 최박사님이 언제부터 오빠랑 키스하는 사이야?"




"원래 반가운 사람을 만났을 때에는 이마나 뺨에 키스하면서 인사하는 거야.

워낙 반가우니까 그 분이 나한테 키스한 거지. 너한테도 했잖아?"




"볼에 하는 키스랑, 입술에 하는 키스랑 같아?"

"그거야 다르지."




"이상하네. 왜 그랬지? 왜 입술에 했지?

그것 뿐이 아니야. 아까는 둘이 왜 불어로 이야기 했어?"




"그 분이 편하게 하는 말이 불어니까, 나오는 대로 말했을 뿐이야."

"거짓말 하지 마. 나 듣지 말라고 둘이만 얘기한 것 같은데?




"너랑 나랑 어디서 잘 생각이냐고, 자기 집에 가서 자자고 했거든요.

나는 호텔에서 자겠다고 했고.

너 모르게 나랑 그 분이랑 할 비밀 얘기가 뭐 있다고. .."




"수상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란 말이야."

"그런 말도 안되는 꼬투리나 잡으려고 여기까지 따라왔니?"




"꼬투리는 무슨 꼬투리를 잡았다고 그래?

눈에 띄니까 물어본 거지."




"알았어."

"하여간에. .. 이제 나한테는 애정이 완전 식었다니가."




"뭐라고? 하하."













깜찍한 지혜의 두 눈이 깜빡거리면서 반짝인다. 이제 보니까 입술을 빨갛게 칠한 것 같다. 조명을 받는지, 너무 예쁜 얼굴이다. 외투를 벗으니까 몸매도 완전 성인같다.







나는 위스키 두 잔과 와인 두 잔을 마셨다. 지혜는 내 와인 몇 모금을 빼앗아 마셨다. 나는 지혜와 함께 방으로 올라왔다.







우리는 잠옷으로 갈아입었다. 우리는 서로를 마주보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지혜가 너무 예쁘다. 










"지혜 잘 자."

"오빠도 잘 자."










그런데 갑자기 지혜가 벌떡 일어서더니, 재빨리 내 옆으로 와서 앉는다. 순식간에 입을 열고 혀를 꺼내서, 혀끝으로 내 입술을 핥는다. 그러다가 이맛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홱 돌린다.













"아오. .. 술 냄새."

"마셨으니까 냄새나는 것이 당연하지않니?"




"나한테서도 나지?"

"그렇다니까. 읍. . .으읍. .. "










지혜는 말하고 있는 내 입술을 빨아당긴다. 내 손을 자기 잠옷 위로 가져가서 가슴 위로 얹고 지긋이 누른다. 오랜만에 잡히는 지혜의 가슴이 뭉클한다. 요것이 어느새 브레지어는 빼버렸다.




하긴. 지혜는 밖에 나갈 때 말고는 브라를 잘 하지 않는다.




나도 지혜의 가슴을 지긋이 움켜쥐며 지혜의 입술을 빨았다. 지혜가 자신있게 내게 몸을 밀어붙인다. 나는 뒤로 넘어지려는 것을 앞으로 힘을 주며 참고 버텼다. 그러는 바람에 지혜의 가슴이 내 가슴을 뭉클 하고 누른다. 나는 지혜에게서 입을 떼고 지혜를 나무랐다.













"지혜야. 이건 엄연한 반칙이거든요?"




"뭐가?"

"몰라서 물어?"




"아하. 이거? 반칙이야 오빠가 먼저 했지.

다른 여자랑 키스하고, 나 알아듣지 못하게 불어로 얘기하니까"




"그거 별 것 아니라고 했거든."

"이런 정도의 반칙 정도야 우리가 늘 하던 것 아닌가?"










지혜는 몸싸움을 하다시피 해서 드디어 나를 눕히고, 내 위로 올라와서 엎드린다. 나는 지혜가 떨어질까봐서 침대와 나란하게 누웠다. 지혜는 내 다리를 열고, 내 허벅지 사이로 자기 다리를 딱 붙여서 넣는다. 그런데 나라고 해서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마음도 마음이지만, 내 몸이 이미 반응을 해버린 것이다. 남자의 몸이란 숨긴다고 해서 숨겨질 일이 아니다.










"고만하고 이제 건너가."

"조금만 있다가 갈게."










지혜가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것은 거짓말임에 틀림이 없다. 지혜는 내 입술과 혀를 놓아주지 않는다. 나는 내 몸에 얹혀진 지혜의 가슴에서 탄력을 느끼며, 두 팔로 지혜의 몸을 으스러져라 힘껏 안았다. 










"하아. .. 오빠. .. 하아아. .."










나는 내 이불을 당겨다가 지혜의 몸을 덮어서 감쌌다. 그리고 몸을 옆으로 굴려서 지혜를 눕게 하고, 내 팔을 내어주어서 팔벼개를 베게 했다. 우리는 서로를 안고, 지혜가 내 목에 얼굴을 묻는다.










"안건너갈래?"

"이러고 자면 안돼?"










그렇지만 나나 지혜나 잠이 올 리가 없다. 잠은 오다가도 도말치는 것 같다. 우리는 꿈틀거리면서 엎치락뒤치락을 계속한다. 수정이도 수정이지만, 당장은 지혜가 문제이다. 지혜가 문제이기 때문에, 나도 문제이다.




나보고 지혜를 데리고 가라고 말 한 아이린이나 서전무의 저의가 의심스럽다. 내가 지혜의 아빠라면, 저렇게 예쁘게 키워놓은 딸을 어느 남자와 해외로 내보낼 수 있을까? 도저히 그럴 꿈도 꾸지 못할 것이다.




나는 내 옆에 엎드려있는 지혜를 불렀다. 지혜가 고개를 내 쪽으로 들린다.










"지혜, 잠 안오니? 엄마 아빠 생각나지?"

"어. 경식이랑 해수도. 오빠는?"




"나도 그래. 위스키 두 잔으로는 어림없네."

"천사가 옆에 누워있는데, 그런다고 잠이 오겠어? 하하."










그렇다.

지혜 말이 맞다.

지혜는 천사이다.




지혜는 작은, 그리고 나쁜 천사이다.

결론은, 지혜는 악마이다.




착하고 귀여운 악마.

너 때문에 내가 너무 괴롭다.










나는 지혜의 얼굴을 머엉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지혜는 천천히 잠에 빠져든다.

나는 잠들기 위해서 욕실로 가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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